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브로니슬라프 카민스키 (문단 편집) === [[독소전쟁]] === [[1941년]] [[나치 독일군]]이 [[바르바로사 작전]]을 개시하여 독일-소련 국경이 혼란해지고, 더불어 카민스키가 있던 브랸스크에도 독일군이 쳐들어왔다. 카민스키는 같이 수감되어 있던 친구 콘스탄틴 보스코보이니크(Konstantin Voskoboinik)와 같이 수용소에서 풀려났고, 독일군에게 부역할 것을 약속하며 브랸스크 지방의 자치권을 얻어냈다. 브랸스크의 대표자는 보스코보이니크가 맡았고 카민스키는 그를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당시 브랸스크 주변에는 소련계 파르티잔이 활동하여 치안이 불안정했다. 보스코보이니크와 카민스키는 친독계 성향 소련인을 모집해 자경단을 조직하여 치안 유지에 나섰다. 자경단을 조직한 후에 카민스키는 브랸스크 일대의 자치원을 독일군에게 양도하고, 집단 농장을 폐쇄한 뒤 반공 성향을 지닌 러시아인, 벨라루스인을 모집하였다. [[1942년]] 보스코보이니크가 [[소련군]] [[공수부대]]와의 교전 중에 사망하자 카민스키는 자경단의 수장이 되었다. 카민스키는 러시아 국민 해방군(Русская Освободительная Народная Армия)으로 바꾸었다. 당시 인원은 2만 명 정도였다. 카민스키의 군대는 동족인 소련인으로 구성된 파르티잔임에도 그들을 철저하게 진압하여 해방군 사령부 주변에는 목 매달린 파르티잔 시체가 흔히 보였고 이로 인해 침략군인 독일군에게도 큰 신뢰를 받고 있었다. 독일군 제2군 사령관 [[https://en.wikipedia.org/wiki/Rudolf_Schmidt|루돌프 슈미트]] [[상급대장]][* 일부 사이트에서 루돌프 슈미트 "원수"라고 적어 놓은 것이 검색되는데 사실이 아니다.]과도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고, 제2군의 상급 제대인 중부집단군의 사령관 [[귄터 폰 클루게]]도 이들이 자치권을 행사하는 것을 보장해 주었다. 카민스키는 [[로코트 자치국]](Lokot Autonomy)을 세워 자치국의 지배자가 되었고 해당 지방의 민병대를 [[여단]]으로 재편해 스스로 여단장이 되었다. 이들의 활동으로 골머리를 앓던 소련 정부에서 "귀순하면 사면해 주겠다"고 통보하여 해방군에 다수의 탈주자가 발생하는 바람에 부대 자체가 망할 뻔했으나 카민스키는 탈주자의 즉결 처분을 지시해 해방군의 붕괴를 간신히 막을 수 있었다. 1942년 후반에는 단순히 [[알보병]]만으로 구성되어 있던 부대가 [[BT 전차]] 등의 기갑 전력을 노획하기도 하는 등 무시 못할 세력으로 자리잡았다.[* 나중에는 독일군이 노획한 [[T-34-85|T-34]] 같은 전차까지 몇 대 넘겨받지만, 애초부터 민병대 따위가 그런 기갑 전력을 보유한들 전세 역전에 별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분명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